이모. 밥주세요..

엊그제는 정말 간만에 을지로입구 백병원근처 냉면집서 과거 연극하던 선후배모임이 있어 갔었다.  그냉면집은 낮11시부터 줄을 서는 맛집으로 유명했는데 2년이 되어가는 코로나로 한달에 서너번은 출근도장을 찍던 나부터 2년만에 갔으니 장사가 잘되었을 턱이 만무했을 것이다. 그만큼 코로나는 골목길상권.특히 먹는 장사들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집은 오래전부터 3년후배가 장인이하던 집을 물려받아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으나 과로로 장사가 힘들어 3년전부터 주인이 바뀐 집이었다. 


식당 2층에 20분일찍 도착하여 마스크를 쓰고 모자까지 눌러쓴 나를 조선족아줌마는 마치 돌아온 친정오라버니 대하듯 반가워했고 뜨거운 육수주전자를 갖다주었다. 1시가 다되니 가게안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고 그후로는 우리들이 식당을  전세낸 풍경이었다. 괴거에는 안그랬다. 거의 낮3시까지는 안주로 무제한주는 닭무침을 여러번시키며 소주를 몇명씩 마셔대는 노년층이 많았고 서로들 과거 잘나가던 시절을 자랑하며 떠들며 지내던 곳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냉면값은 만원에서 천원오른 가격인데 좀 야박하게 닭무침은 한번만 제공된다고 써부친게 눈에 들어왔다.


냉면집에 들어가기전 근처 인쇄골목을 찬찬히 한시간정도 김영철의 동네한바퀴하듯 돌아다녀보고 허영만의 백반기행처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무얼 먹나 구석구석 눈여겨 보았다. 그많던 인쇄소는 몇년전보다 많이 줄었고 인쇄소하는 집들은 작은 식당으로 많이 변해 직장인들이 바글바글 앉아 점심한끼를 채우고 있었다. 김치찌개집.돈가스집. 백반집. 생선구이집에 사람들이 많아 역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게 맞는 말이었다.


사실 을지로 인쇄골목은 과거 대학때부터 직장초년병시절까지  연극공연을 10년넘어 할때라 나는 포스터.팜프렛.지라시를 만든다고 엄청 드나들던 곳이어서 유달리 이골목에는 애정이 많이 갔다. 덜컹덜컹 돌아가는 윤전기소리가 내가슴을 설레게 했고 늘 이번 공연만은 대박을 칠것같은 예감이 들기고 해서 상큼한 잉크냄새가 묻어나는 첫 팜플랫을 아기다루듯이 받으며 만족한 적이 참 많았던 때가 있었다.


과거 을지로거리는 서울에서 최고로 중심가였고 제일로 번화했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서울의 이름난 변두리였던 금호동에서 버스를 타고 언덕을 넘어 을지로6가 계림극장서 전차로 갈아타고 시청앞까지 신나게 통학하던 전차가 유일하게 을지로에만 있었다. 요사이 을지로는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의 점심해결과 퇴근길 술한잔하는 이모카세(이모와 오마카세의 합성어)로 변했고 특히 일반가게앞에서 식탁을 몇개놓고 즉석에서 주문대로 간단한 케찹뿌려준 계란말이며 닭돼지찌개를 파는 가게들로 엄청나게 번성하는 골목길 식당길로 변했다.


이제 추운겨울이 곧 닥아오고 있다.  을지로에서 큰돈안쓰며 직징인들끼리 아니면 옛날 친구들이 가맥(가게맥주)하며 보내는 시간이 오고있다.  얼마나 서민적이고 낭만적인가.  이모 밥주세요. 배고파요.. 한마디하면 나오는 계란말이와 두부듬뿍넣은 된장찌개는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할것이다. 

이모는 언제 불러도 정다운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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